- 기원전 625년 탈레스 출생
수학 이외에도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지만, 최초로 수학에 논증을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일화로는 교과서에도 실린 피라미드와 막대의 그림자 비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 구하기, 일식의 규칙성을 밝혀내고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 예측 외에도 중학교 수학과정에서 배우는 탈레스의 정리 등을 남겼다.
- 기원전 570년 피타고라스 출생.
가장 널리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그의 증명 이외에도 다양한 증명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집트나 바빌론 등에서 다른 명칭으로 쓰이던 기록이 있다. 오히려 이보다도 유리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히파소스의 일화[7]로 인해 무리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 기원전 490년 엘레아의 제논 출생.
제논은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옹호하기 위해 귀류법을 사용하여 그 유명한 제논의 역설을 고안해냈다. 이는 논리학, 철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후대의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수학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궁리한 끝에 무한등비급수를 거쳐 미적분의 열쇠에 이르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얻었다는 것에 수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 기원전 470년경 수학자 히포크라테스 출생[8]
키오스 섬에서 태어난 그는 상인이 되고자 하였으나, 해적에게 전 재산을 털린 뒤, 수학자가 되었다. 그가 지은 기하학 원론은 약 100년 뒤 나온 유클리드의 원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히포크라테스의 초승달 [9] 문제와 두 원의 넓이 비 = 지름의 제곱 비를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 기원전 450년 브리슨이 착출법을 고안, 그리고 기원전 430년 안티폰이 이를 이용해 원의 넓이를 계산.
정다각형과 그 외접원의 면적 차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한없이 소멸된다는 관점에서 원의 넓이를 구하고자 하였다.
- 기원전 428년 아르키타스 출생
피타고라스 학파이던 그는 옥타브 문제를 수학에 대입시켜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였고, 한 옥타브를 셋으로 나누는, 즉 2의 세제곱근을 구하는 문제를 통해 3대 작도 불능 문제 중 하나인 델로스 문제[10]를 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와 컴퍼스에서 벗어나 반원기둥을 절단하는 아르키타스의 원기둥이라는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플라톤의 비난을 받았나는 기록도 있다.
- 기원전 427년 플라톤 출생
그는 정다면체가 4, 6, 8, 12, 20 다섯 종류밖에 없고, 여기에 4원소설을 대응시켜 불은 정사면체,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의 형상을 띠고 있으며, 우주는 황도 12궁을 따와 정십이면체로 이루어졌다는 저술을 남겼다. 거기서 따와 정다면체들은 플라톤의 다면체라고도 부르는데, 정작 그것을 발견하고 정다면체가 다섯 개밖에 없다고 증명한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였다.
- 기원전 408년 에우독소스 출생
그의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 시켜 천동설을 제창하였으며, 그의 실진법[11]을 아르키메데스가 발전시켜 적분의 시초인 구적법을 창안해냈다.
그 이외에도 델로스 문제 증명을 통해 일반 비례론을 세웠고, 그가 증명한 여러 평면, 입체 기하학문제 들은 후일 유클리드에 의해 원론 5권에 정리되었다.
- 기원전 384년 아리스토텔레스 출생.
- 기원전 375년 메나이크모스 출생.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으로 기하학을 좀더 배울 수 있는 법을 묻는 알렉산더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답했나는 일화가 정해진다.[12] 또한 원뿔곡선을 발견하고 저서 원뿔곡선론을 통해 관련 개념들을 정의하였다. 이를 통해 평면에 한정되었던 기하학을 3차원인 해석기하학으로 확장시킨다.
- 기원전 330년 유클리드 출생.
- 기원전 310년 아리스타르코스 출생.
지구가 아닌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1년 주기로 그 둘레를 공전하며, 하루를 주기로 자전한다고 주장한 천문학의 선구자이다. 동시에 오차가 있긴 하지만, 태양과 달, 지구의 부피와 지름 대한 최초의 가정을 내놓았으며, 삼각비와 월식 관측등을 통해 태양과 달, 지구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였다. 다만, 거리문제의 경우는 당시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고, 위도에 따른 지구와 달 사이 각도의 오차를 알지 못했던 점으로 인해 그가 잘못 구한 87도 대신 89.85도를 그의 계산식에 대입해보면, 거의 정확한 값이 나온다.
- 기원전 287년 아르키메데스 출생.
내접하는 정n각형 둘레 < 원의 둘레 < 외접하는 정n각형 둘레이고 다각형의 변 개수가 많을수록, 원 안팎의 정n각형 둘레간의 차이가 적어진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정96각형을 그려서 원주율의 근사값을 구했다. 그의 계산값 3.1408 < 원주율 < 3.1428 은 소수점 두자리까지 정확하므로, 3.14를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도 부른다.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는 그에 내접하는 삼각형 넓이의 4/3이 되고, 구의 겉넓이와 부피는, 외접하는 원기둥의 겉넓이와 부피의 2/3이 됨을 증명하였고, 그는 이 증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의 묘비에 세겨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13] 그가 이 과정에서 사용한 구분구적법은 훗날 적분의 기초가 되었다.
- 기원전 273년 에라토스테네스 출생.
- 기원전 262년 아폴로니우스 출생.
앞서 메나이크모스가 제창한 원뿔곡선에 대한 저서 원뿔곡선론을 저술하였으며, 여기서 쌍곡선, 타원, 포물선 등의 명명과 그 특징 등 원뿔곡선에 대한 기초정리를 거의 완료하였다.
그의 이름을 딴 아폴로니우스의 원, 아폴로니우스의 중선정리[14], 아폴로니우스의 체[15]
그가 제시한 천동설의 주전원, 이심원 모델은 훗날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완성된다.
- 기원전 120년 헤론 출생.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헤론의 공식, 이차방정식의 풀이법, 음수의 제곱근 등을 남겼다.
[7] 겁도 없이 스승에게 각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유리수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대들었다가 스승에 의해 물에 빠져 죽었다.[8] 코스섬에서 태어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동명 이인[9]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두 변을 반지름으로 삼는 사분원과 빗변을 지름으로 삼는 반원을 겹쳐 그리고, 공통부분을 제외한 초승달 모양의 곡선 도형과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면적이 같음을 증명하였다.[10] 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 큰 정육면체의 작도[11] 전체 면적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고, 남은 전체 면적에서 다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는 과정을 되풀이 할 경우 어떤 정해진 면적보다도 작은 면적을 남게 할 수 있다.[12] 시골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기하학에는 오직 한 길밖에 없다.[13] 실제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의 무덤은, 1965년 호텔 기초공사 작업 중, 원기둥에 내접한 구의 심볼이 그려진 묘비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14] 고등교과과정에서 배우는 파푸스의 중선정리의 본래 명칭. 해외에서는 다 아폴로니우스 중선정리로 부른다.[15] 원 안에 크기가 동일한 원 세 개를 내접하게끔 삼각꼴로 배치하면, 곡선 삼각형이 4개 생긴다. 그리고 각 곡선 삼각형에 내접하게끔 원을 그리면 새로운 곡선삼각형이 3개 생기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일종의 프랙탈 도형을 그릴 수 있다.